<모시시편>
한산모시 / 구재기
- 그 전설을 찾아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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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 온 뒤에 햇살이 돋자 노인은 여느 날처럼 산에 올랐어요. 약초를 캐기 위해서였지요. 그러다가 산비탈에서 그만 쪼르르 미끄러지고 말았어요. 정신없이 미끄러져 내리면서 손에 닿는 나무 하나 움켜쥐었어요. 움켜쥔 나무가 뿌리께서 툭 끊어져버리더니 곧 고주배기에 걸렸어요. 올가미처럼 척 걸렸던 셈이지요. 그 바람에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어요. 움켜쥔 나무는 뿌리로부터 끊어지고 꺾어지기는 하여도 잘라지지는 않았어요. 참 질기기도 한 거지요. 노인은 정신을 차리면서 참 이상한 나무도 다 있구나 생각했지요.
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가 아니라 풀이었어요. 아니 풀이 분명한데 어찌 보면 나무 같은 거예요. 처음 보는 잎이며 처음 보는 꽃이며, 처음 맡아보는 냄새며, 모두가 처음, 처음이었어요. 다 자란 듯 키가 모두 비슷비슷 노인의 키보다 조금 컸어요. 그 중 하나를 골라 손으로 낚아챘어요. 쉽게 뿌리로부터 끊어져 나와 쉽게 부러졌어요. 쉽게 부러지기는 하여도 잘라지지는 않는 나무 같은 풀. 껍질이 무척 질기기 때문이었지요. 고스란히 껍질을 벗겨냈어요. 껍질을 벗겨내니 그 속에 또 껍질이 있었지요. 속껍질이 있었어요. 미끄럽게 잘 벗겨졌어요.
약초 캐기를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무 같은 풀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속껍질을 벗겨내면서 살펴보았어요. 그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지요. 보들보들하였지요. 무척 보드러웠어요. 그런데 그 속껍질이 무척이나 질겼어요. 양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았어요.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지요. 껍질이 실낱같이 갈라지기도 했어요. 아니 실낱처럼 가늘게 쨀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. 무릎에 대고 잘게 짼 속껍질을 이어보아도 역시나 무척 질겼어요. 아, 이 질긴 속껍질이 산비탈에서 나를 구해냈구나. 가만히 살펴보니 속껍질이 하늘빛을 닮아 있어요. 하늘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한 거지요
지금으로부터 1,500년 전 삼국시대 이야기지요. 그러니까 한산모시는 긴 세월의 하늘빛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요.
*고주배기: 충남 서천지방의 사투리로 줄기를 잘라낸 나무의 밑동
― 2019.《시와소금》봄호(vol.29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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